내가 사랑하는 장소는 ‘이야기’가 묻어 있는 곳이다. 고층빌딩이 서 있고 정비가 잘 된 곳, 아파트와 학원이 빽빽이 들어선 곳보다는, 조금 낡았더라도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이 느껴지는 곳이다. 서울에도 내가 사랑하는 장소가 몇 군데 있고, 그 중에 가장 좋은 곳을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연희동’을 얘기한다. 2014년, 연희창작촌에 입주작가로 머물면서 나의 연희동앓이가 시작됐다.

연희동은 아파트보다 주택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동네다.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산책하다 보면 어디에선가 은은한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오고,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은 나무에 주홍빛 감이 대롱대롱 매달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어느 집에서는 밥을 짓는 따뜻한 냄새가 풍기고, 어느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주민들은 대형마트 대신 연희동을 대표하는 지역마트 사러가쇼핑센터에서 장을 본다. 대로에 들어선 맛집 뿐 아니라 골목마다 주택을 개조한 음식점, 카페, 옷 가게가 보물찾기처럼 숨어 있고, 오래된 이불 가게나 사진관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 더 매력적인 동네.

최근에 연희동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늘었는데, 사러가쇼핑센터 근처에 자리잡은 양갱상점 ‘금옥당’ 덕분이다.

양갱의 기원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동물을 뜻하는 양이라는 글자와 ‘국, 삶다, 끓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갱이라는 글자로 이루어졌는데, 오래 전 중국 내륙지방에서 양고기를 끓일 때 뜬 기름을 굳혀 먹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것을 보고 일본의 승려가 아이디어를 얻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양갱을 만들었고 동양권에서 친근한 간식으로 자리잡았다.

양갱이라고 하면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방. 솜을 누빈 조끼를 걸친 할머니가 햇살처럼 나른하게 앉아 오물오물 양갱을 먹는 모습.

이렇듯 양갱은 어르신들을 위한 간식의 이미지가 강하다.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 아이들이 ‘종합과자 선물세트’를 한 상자씩 품에 안고 행복해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을 때 제일 먼저 집어드는 간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연양갱을 고르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여행을 좋아해서 여러 나라를 산책하듯 걸었는데, 외국을 여행할 때마다 늘 부러운 것이 있었다. 오래된 것을 지키는 마음들. 오래된 것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더 아름답게 이어가는 마음들. 돌아보면 우리나라에도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이 많은데, 그것을 지키고 이어가는 데는 늘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오래된 것들에 편리와 세련미를 더하는 좋은 가게들이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이다. 양갱상점 금옥당도 그 중 하나다.

금옥당의 김현우 대표는 오랫동안 카페 및 레스토랑 컨설팅 일을 해왔다. 컨설팅 일을 하며 직접 매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팥빙수로 유명한 ‘옥루몽’ 역시 김현우 대표가 만든 가게다. 김현우 대표는 스스로 한국적인 것보다 외국의 것을 더 멋진 것으로 여기던 세대, 한국적인 것의 매력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세대였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지금은 고급스러운 한국 다과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서 있다. 

금옥당은 ‘한천*에 설탕을 넣어서 굳힌 투명한 과자’라는 의미로 양갱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금옥당의 양갱은 단맛만 강조된 기존의 양갱과는 달리 좋은 국산 재료를 사용하고 설탕 함량을 줄여 식감과 맛이 뛰어나다. 시원한 수정과와도 어울리고, 뜨거운 커피와도 어울리는 맛.

양갱의 장점은 양갱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금옥당에는 팥양갱, 밤양갱, 단호박양갱 뿐 아니라 녹차, 라즈베리, 밀크티, 피스타치오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양갱이 16종 있다. 연희동에 위치한 제조공장에서 밀양 한천, 공주 밤, 제주 녹차 등 질 좋은 국내산 재료를 직접 손질해서 만든다. 보존제와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아 소량만 생산하고 있다.

맛은 물론, 우리 전통의 꽃 그림을 모티브로 한 패키지가 아름다워 손님이 왔을 때 차와 함께 곁들여 내놓기도 좋고, 결혼이나 돌잔치 답례품, 외국인 친구나 귀한 이에게 전할 선물로도 손색 없이 훌륭하다. 

금옥당에는 양갱을 비롯해서 구운 찰떡, 팥죽, 호박죽, 빙수와 수정과, 오미자차, 쌍화차 등 다양한 음료가 준비돼 있다.

다양한 재료들 중에 김현우 대표가 옥루몽 시절부터 주목해온 주요 재료는 ‘팥’이다. 

팥은 예로부터 오복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는 풍습에 사용됐을 뿐 아니라 팥죽, 떡, 빙수, 빵의 앙금 등 다양한 식재료로 쓰였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팥의 대부분은 중국산이다. 중국산 팥이 워낙 가격이 낮아 국내에서는 팥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농가가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금옥당은 국내산 팥을 고집한다. 수입 팥에 비해 자연적인 단맛을 내고, 영양소가 풍부하며 비타민 함량이 두 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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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너무 세거나 공장화된

먹거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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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당 김현우 대표가 본인의 삶에서도, 사업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건강하고 좋은 재료이다. 좋은 재료를 제철에 선보이기 위해 앞으로는 그 계절에만 만나볼 수 있는 양갱을 만들 계획이다.  

양갱을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재료를 정성껏 손질하고, 가마솥에 저온으로 천천히 앙금을 만드는 과정만 6~8시간이 소요된다. 한천을 녹이고 주재료로 당침을 만드는 등 양갱을 생산하는 데 이틀 이상이 걸린다. 양갱을 만드는 데 들어간 정성과 시간이 맛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자극적인 단맛이 아닌 여운이 오래 남는 달콤함.

요즘 김 대표는 좋은 콩을 찾아다니고 있다. 금옥당 연희점과 서교점, 인사점에 이어 서초점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데, 서초점에서는 기존 메뉴와 더불어 국산 콩으로 만든 질 좋은 두유를 선보이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