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현동 골목에 위치한 비누 공방, 고은재. 오래된 향이 흐른다는 뜻을 담은 만큼 공방의 문을 열기도 전에 차곡차곡 쌓인 허브의 진한 향이 먼저 반겨준다. 고은재의 비누는 뭐든 빠르고 간편한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묵히는 기간까지 최소 1,000일이 걸리는 ‘느린 비누’다. 남들보다 느리지만, 누구보다 정성스럽게 10년 동안 비누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자연에서 나온 모든 것들을 재료로 비누를 만드는 고은재 신동걸 대표. 느리지만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이야기를 전하는 그는, 향이 진하게 압축된 그의 비누 같았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속도보다 방향이고, 방향보다 정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누를 통해 자연을 전하는 고은재 신동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래된 향이 흐르는 곳 고은재. 그 시작이 궁금해요.

신동걸 대표 : 비누를 만들기 전에 부산에서 집을 짓는 일을 했어요. 도중에 사업이 망해 머리를 식힐 겸 허브농장에 찾아가게 되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허브의 매력에 빠지게 된 순간이요.

이 좋은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고 싶었죠. 농장 운영이나 허브 재배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토지 허가 문제도 있어, 섣불리 손댈 수가 없었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비누를 생각하게 되었고, 곧바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당시 시중에 나와 있는 비누 레시피를 모조리 섭렵했죠. 한 2년 동안은 계속 비누를 만들고, 연구하고, 새롭게 개발도 했어요. 그때가 고은재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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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향을 처음 맡은 순간을 잊지 못해요. 우연히 들른 곳에서 제 운명을 만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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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허브를 다루는 만큼,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실 것 같아요.

지금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 공방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비누를 연구하고 만들 때 가장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은 역시 비누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을 때이고요.

이곳 서울에 공방을 차린 이유가 있을까요?

2년 동안 연구하고 개발한 비누를 경주에 있는 호텔에서 처음 사람들에게 선보였는데, 기대했던 것 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만든 비누를 소개하고 싶었고,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서울에서 공방을 차리기로 결심하고, 처음으로 인사동 쌈지길에 고은재 공방을 열게 되었죠. 금요일 저녁에는 부산에 내려가 비누를 만들고, 일요일에는 그걸 서울에 가져와 판매했어요. 그런 생활을 몇 개월 동안 이어갔어요. 

2010년 6월에 인사동에 입점했는데, 몇 개월 후에 일본 방송사 NHK와 후지TV에 고은재가 ‘한국 여행 필수 코스’라고 소개가 되었더라고요. 이 일을 계기로 일본에 한국 비누를 수출할 수 있었고, 북아현동으로 옮겨 공방을 차릴 수 있게 된 거죠. 지금은 이곳에서 비누를 만들고 연구해요. 판매는 온라인에서만 진행하고 있고요. 

고은재에서 판매하고 있는 비누는 어떤 것들인가요?

크게 약산성, 약알칼리, 카스틸 비누가 있어요. 카스틸 비누는 동백오일, 아보카도오일 등 순식물성오일 100%로 만든 비누예요. 모두 자연물과 천연 허브, 한방 재료로 만들고 있죠.

특별한 방법으로 비누를 만들고 계신다고.

식물성오일과 자연의 재료를 섞어 만든 비누 반죽을 찌고, 굳히는 과정을 3번 반복해요. 저는 삼증삼화 방식이라고 부르는데, 이 방식으로 비누를 만들면 비누를 다 사용할 때까지 향이 남아있게 되죠. 처음에는 90℃ 정도의 고열로 찌고, 다음에는 중간열, 약한열을 이용해요. 이 과정에서 가성소다 액체와 오일층이 분리가 되는 걸 막아주고, 향도 휘발되지 않게 꽉 잡아주는 거죠. 

처음에는 가마솥에서 직접 찌고 만들었는데, 서울 공방으로 옮기면서 실내에서도 찔 수 있게 온장고를 이용하고 있어요.

진한 향의 비결이 여기에 있었군요. 하나 더 놀라운 것은 고은재 비누는 유통기한이 없다고요.

네, 천연 식물성 오일만을 사용하기 때문이에요. 현재 사용하는 오일 종류만 해도 120가지나 되고 모두 천연의 고품질 오일이에요. 

공방에 대나무 통이 많은데, 이건 어떤 용도인가요?

대나무 통에서 비누를 숙성해요. 최소 500일의 숙성 시간이 필요하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는데, 대나무가 가장 효과적이었죠. 숙성 기간을 거친 비누는 잘 녹지 않고, 혹시 남아있을 수 있는 화학성분을 날아가게 해줘요. 

뭐든 빠르고 간편한 삶을 추구하는 시대에, ‘느린 비누’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느린 비누만이 가지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원재료의 좋은 점은 살리고, 기존 비누가 가지는 단점을 개선할 수 있어요.

개성을 살린 수제 비누 가게가 많은데, 유독 사람들이 고은재 비누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까요?

사람들에게 필요한 비누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 최근에는 손 씻기 전용 비누를 새로 개발해 판매하고 있어요. 어느 때보다 손 씻기가 중요해진 시점에서 비누의 쓰임새가 새로 주목을 받는 것이죠.

비누로 30초 이상 손을 씻으면 세균은 죽겠지만, 비누에 있는 계면활성제 등의 화학성분이 피부를 건조하게 만들고 노화를 빠르게 진행시켜요. 세균은 죽이되, 피부에 해를 입히지 않는 순한 비누를 연구하다가 유황소금으로 비누를 만들게 되었죠. 지금도 온라인에서 판매 중이고요.    

막걸리, 누에똥타마누, 호호바시어버터 등 흔하지 않은 재료로 비누를 만들고 계세요. 이 또한 고은재 비누의 강점일 것 같아요.

좋은 재료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웃음) 새로운 재료를 접하면 일단 비누에 접목해 보고 싶어지죠. 누에똥타마누 비누는 누에똥이 아토피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기사를 보고 만들게 되었어요. 실제로 비누를 써보고 아토피가 개선되었다는 손님의 말을 듣고 무척 기뻤죠. 

재료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시나요?

모든 자연물이요. 화학성분이나 인공 재료를 쓰지 않고, 비누를 통해 자연 그대로를 전달하고 싶어요. 줄곧 유기농 재료를 써오다가 최근에 와일드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야생에서 자란 날 것 그대로의 특성을 비누에 접목했죠. 더 좋은 자연의 재료가 있다면 계속 바꿔나갈 생각이에요.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새로운 재료가 있나요?

꾸준히 새로운 재료와 오일로 비누를 개발하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 식초를 비누에 접목하기 위해 연구했죠. 식초는 피부를 환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데, 냄새가 좋지 않아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과와 결합해 사과식초비누를 만들었어요. 며칠 전부터 판매를 시작했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고 있어요.  

공방에서 재료 선정부터 기획, 제작, 포장, 발송까지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다고요.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사람의 피부 타입에 딱 맞는 비누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기획하게 됐어요. 비누 종류는 많은데, 어떤 비누가 내 피부에 맞을지 고민스럽잖아요. 자신의 피부 타입을 기계로 측정하고, 그에 맞는 비누와 클렌징 오일을 만드는 클래스예요. 지금은 중단했지만, 추후 다시 진행할 계획이에요. 

고은재만의 철학을 지켜나가기 위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가게를 운영하실 계획인지.

더 건강하고 좋은 재료. 국내만 해도 많은 소퍼(soaper)들이 활동하고 있고, 모두 실력이 좋아요. 그들과 견주어 고은재만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더욱더 좋은 재료를 사용할 생각이에요.

고은재가 사람들에게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기를 바라세요?

비누를 통해 자연을 전달해주는 공방이요. 자연의 재료를 잘 다듬어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