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이라는 지명은 많은 장소를 내포한다. 홍익대학교 정문 앞 서교동 삼거리 혹은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그도 아니면 상수동. ‘홍대 앞’은 젊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크리에이터들의 실험실이자 무대다. 허황된 것들에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오리지널리티의 집합체. 그것이 홍대 앞이다. 

언젠가부터 그 고유한 분위기를 대형 서점과 영화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과 카페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벌써 오래 전 필자가 학교에 입학할 무렵과 비교해 본다면,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젊은 유동인구가 넘쳐나는 그 거리는 대형 소매 브랜드들이 신사업의 가능성을 점치기 전 거치는 시험대로 전락했다. 한편, 상수동 카페거리에는 필자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있던 오래된 가게들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었다. 눈에 익지 않아 어떻게 읽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호들과 카페. 어쩌면 가게 이름보다 거리 고유의 분위기가 더 선명한 곳. 서교동 삼거리가 아니면, 상수동인가. 젊고 힘이 넘치는 홍대 앞은 이제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리카페(Yiri Café)’는 최근 유명 TV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대중에게 모습을 비춘 바 있다. 감성적이고, 레트로한 인테리어는 홍대 거리의 카페에 대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며, 유명세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리카페가 세워진 것은 2004년, <놀면 뭐하니>나 <무한도전>에 등장하기 훨씬 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18년째, 이리카페가 인기를 얻는 비결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주용 대표는 서교동에서 카페를 오픈했고, 2009년 상수동으로 가게를 이전했다. 본업을 화가라고 소개한 이 대표는 이리카페를 카페 및 문화 예술 대안 공간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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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예술 분야의 친구, 지인분들이 편하게 작업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영업에 발을 들인 건 멋모르고 한 시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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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카페의 명칭인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황야의 이리》(1927)로부터 영감을 받아 짓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성과 본능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예술가들의 이미지가 고독한 이리의 그것과 닮아 있는 것 같다고. 너무도 쉽게 가지게 되는 작은 환상들이 곧 예술가의 행동 범위를 위축시키는 모습을 상기했을 때, 이리카페는 메마른 황야를 배회하는 이리들이 잠시나마 곁을 허락할 수 있는 무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리카페의 시작이 홍대에서 비롯한 이유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홍대는 2000년대 초 중반, 예술적 활동과 교류가 가장 빈번했고, 다양한 서브컬처 또한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역이었어요. 메인 상권에서 벗어나, 변두리 지역의 반지하 장소에서 카페를 시작했죠.” 

이리카페는 그 묘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제 주장하기 바쁜 형형색색의 간판과 대비되는 서늘한 느낌의 외관과 목조 기둥 너머로 주황빛 전구색이 은은하게 실내를 감싸고 있다. 탁 트인 공간이 주는 편안함은 곧 카페 곳곳에 녹아든 오브제들에 대한 동경으로 바뀌게 된다. 윤동주부터 유재하, 이중섭과 존 레넌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천장 아래로 손때 묻은 시집들과 예술서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1930년대 경성에 대한 묘한 오마주가 느껴진달까. 

이 대표는 “2004년 당시, 서교동에서 시작한 카페는 서구풍의 인더스트리얼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2010년 상수동으로 이전하면서, 보다 편안한 한국적인 감성을 실천해 보자고 생각했죠.”라고 전했다. 카페의 인테리어를 고안할 때, 그는 골목길, 풍물시장, 전통가옥, 미술 전시장이나 공연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리카페는 음악, 미술, 글쓰기, 영화 등 예술 전반에 대한 존중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카페를 오픈하고18년 동안,  이 대표는 시 낭송회, 인디 밴드, 연극, 무용,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300회 이상, 미술과 사진 전시는 100여 회 이상 유치해왔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약 2년간은 문화 행사들이 잠정 중단되기도 했지만, 2022년 현재는 그동안의 재정 손실을 복구하는 일에서부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이리카페가 걸어온 발자취는 곧 자신만의 인장을 만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스타벅스가 상수동 카페 거리에 침범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이 대표는 개인 카페가 프랜차이즈 카페와 대비하여 가져야 할 차별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 대안공간으로 시작된 이리카페의 경우, 커피에 대한 전문성은 타 유명 커피 브랜드에 비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를 위해 몇 년 동안 커피에 대한 공부를 별도로 하고 있죠. 프랜차이즈 카페가 가진 전문성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개인 카페만의 자유로움과 독특함은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말하자면, 트렌드를 인지하되, 트렌드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것이 개인 카페만의 경쟁력인 셈이죠.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이 대표는 가게를 운영하는 것과 관련한 최종 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리카페는 창작, 중독, 영감이 교차되고 순환되는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홍대라는 특성으로 예술 분야의 거점으로 국한되는 것은 지양하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분들이 커피에 중독되는 것처럼 이 공간에 중독되고,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창작에 몰두할 수 있길 바랍니다.” 

결국, 가게가 오래 지속되기 위해선 장사가 잘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 대표. 그는 이리카페를 찾는 손님들에게 맛있는 커피와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생각해 보면 홍대는 힙한 예술가들의 전유물이기 전, 실험 정신으로 무장한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태동하던 곳이다. 이들은 홍대 감성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감성을 시장에 선보였다. 영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트렌드를 읽고 때로는 타협하기도 했으나, 보편적인 수요를 오래도록 견인하는 것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자신만의 콘텐츠임을 잘 알고 있었다. 상수동 카페거리에 그 어떤 획일화나 일반화가 성립되지 않는 이유인 셈이다. 

필자는 홍대 정신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상수동 카페 거리를 보여주고 싶다. 마포구 와우산로 3길 27, 여기 작지만 오래가는 카페에 그 답이 있다.